소비자의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

작성자
소비자시민모임
작성일
2018-08-21 15:33
조회
286

소비자의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

sr_201704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신차 구매는 큰 투자이며, 차량에 대한 신뢰성과 안전성으로부터 나오는 마음의 평화(the peace of mind)가 중요하다. 그 신뢰가 한번 흔들리면(once their faith is shaken),  차량은 그들에게 가치를 잃을 뿐만 아니라, 차량 운행은 불안과 우려로 가득차게 된다(1968년 Chevrolet 차량 관련 미국 New Jersey주 법원의 판결문에서 인용).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집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2012년~2013년 관련 법안들이 다수 발의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위 법안들은 그 뒤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제19대 국회 회기 만료로 모두 폐기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2018년에 소비자분야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고 되어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다. 그래도 어찌되었듯 제20대 국회 초기 집단소송제에 대한 몇 개의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것으로 끝이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아무 것도 진행된 것이 없다.

BMW 화재 사건이 일어나니 또다시 정치권이나 정부가 나서 소비자피해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러한 제도가 실제로 도입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아닌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는 변한 것이 거의 없다. 한국형 레몬법 도입이나 제조물책임법 개정 등이 마치 상당한 진전인양 얘기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여전히 법과 제도가 소비자에게 비우호적이고 피해구제에 친화적이지 못하다. 소비자의 마음의 평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형 레몬법을 살펴보자. 신차 구입 후 1년 이내에 중대한 하자가 2회 발생하고 수리한 이후에도 동일한 하자가 계속해서 발생하면 신차 교환이나 환불을 해 준다고 한다. 자동차의 특수성을 감안해 볼때 중대한 하자가 2번이나 발생해야만 한다는 조건은 이미 소비자에게 친화적이지 못하다. 중대한 하자에도 불구하고 하자가 2번 발생할 때까지 목숨을 걸고 타고 다니라는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BMW 화재 사고의 경우와 같이 중대한 하자가 1회 발생하여 차량이 불타 없어져 버리면 레몬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제조물책임법은 피해액의 3배까지 보상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그러나 그 조건은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경우이어야 한다. 이런 3배 배상은 진정한 의미의 징벌적 손해배상도 아니거니와 BMW 화재 사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비자가 화재에 잘 대응해서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에 손해를 입지 않으면 아예 적용대상도 아니다. 조금 거칠게 얘기하면 화재 발생시 죽거나 중상을 입어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는데 그나마 3배를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가 소위 ‘글로벌 봉’으로 전락하는 것은 이와 같이 소비자에게 비우호적이고 친화적이지 못한 법과 제도의 탓이 크다. 소비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기업들의 고의 또는 악의적인 행위에 피해를 입고 있고 기업들은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 별다른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당당하기까지 하다. 가습기살균제 이후 연비 조작 사건 등 굵직한 다수 소비자 피해 사건이 잊을만하면 발생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보이는 기업의 태도가 비슷한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의무에 여야가 없다고 한다면 소비자 문제에 있어서도 여당과 야당이 있을 수가 없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민주화와 같이 진정한 경제민주화는 정부가 아닌 소비자의 손에 적절한 규제권한을 주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이 있으면 국민이 선거를 통해 이러한 사람을 배척하듯이 소비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면 소비자가 적절한 수단을 통해 이러한 기업을 시장에서 배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는 소비자가 시장경제의 주인이 되어 기업에 대한 규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의 주권이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부디 이번에는 국회와 정부가 합심하여 소비자 피해의 효과적인 구제를 위한 핵심 제도인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신속하게 제정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18년에 소비자분야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소비자 피해구제 지원 등 소비자권익증진사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재원 조성·추진”이라는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소비자리포트 2018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