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다시 생각해 보는 컨슈머리즘(Consumerism)

작성자
소비자시민모임
작성일
2020-09-21 16:06
조회
114

COVID-19, 다시 생각해 보는 컨슈머리즘(Consumerism)


최재섭 이사우리 시대엔 겪어보지 못했던 팬데믹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감염의 위험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은 위축되고 사회·경제·문화 등 곳곳에서 생소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는 다 팬데믹의 영향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 같다. ‘언택트’라고 불리는 사회·경제적 변화도 그렇다. 이젠 언택트는 ‘뉴노멀’이 되었다. 하지만 그 ‘뉴노멀’을 코로나19가 초래했다고 하는 것은 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냥 티핑 포인트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미 2016년부터 쓰기 시작한 4차 산업혁명, 또는 Industry 4.0이라는 개념은 현재까지 인간이 개발한 최고의 기술들을 통해서 인간을 배제한 패러다임을 구축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그 결과, 곧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통제하는 소수의 인간이 AI와 로봇을 통제하고, 대다수의 인간은 그 AI와 로봇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는 어떤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요인으로 한순간 폭발하는 것을 말한다. 역학(疫學)에서는 바이러스가 병을 일으킬 만큼의 수에 다다르는 순간을 가리킨다. 기술혁신으로 무장한 4차 산업혁명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티핑 포인트를 만났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이다.


유통산업 역시 4.0(Retail 4.0)의 시대에 들어서 있었다. 다만 팬데믹이 티핑 포인트가 되어서 모두가 알게 되었을 뿐이다. 모든 유통 채널들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되어 클릭 한번, 전화 한번으로 거래가 가능한 ‘옴니채널’은 유통의 ‘뉴노멀’이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는 2011년 지하철역에 가상점포를 열었었다. 퇴근길에 지하철역 벽에 설치된 가상점포에서 쇼핑을 하고, 집에 도착해보면 배송이 되어있는 언택트 쇼핑, 로켓배송이었다. 언택트 유통의 효율성과 편리성은 소비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소비자들은 더 편리해졌고, 더 싸게 소비할 수 있었다. 언택트 유통의 확산과 발전을 돌려 세울 수는 없다. 오히려 유통산업은 더 효율적이고 더 편리한,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더 매혹적인 시스템과 서비스를 더 개발해낼 것이다.


물론, 이익이 극대화되는 선에서 남는 건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 5월, 빠른 배송을 내세웠던 소셜커머스 기업의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감염환자가 발생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노동환경이었다. 미흡한 방역 환경 하에서,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누군지 모를 작업자가 썼던 작업복과 장비를 함께 쓰면서, 플랫폼 노동자, 그들은 우리가 로켓배송을 받도록 일하고 있었다. 발빠른 유통 대기업들은 옴니채널의 형태로 플랫폼을 구축했다. 롯데, 신세계 등은 이미 언택트 유통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유통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배달 플랫폼은 고객이 주문하는 여러 배달을 하나로 모아 ‘큐레이션 쇼핑’을 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질주하는 배달원들의 갈급함과 자영업자들이 부담하는 배달료로 대부분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는 매장 하나, 창고 하나 갖고 있지 않지만, 큐레이션을 통해, 존재하지 않지만 작동하는 ‘마트’를 운영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언택트 유통의 대부분의 과정은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해 그야말로 ‘언택트’로 이루어지지만, 배송은 ‘현실’이다. 최저가와 최단시간 배송을 지향하는 가운데서 배송노동자의 인권과 환경파괴의 우려는 간과되었다. 이윤을 향해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눈을 막고 달리는 기업에게 해결책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답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소비자주의(Consumerism)를 다시 생각해 본다.


소비자주의는 소비자들이 힘을 모아 왜곡된 현상을 시정하고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를 지키려는 이념이자 철학이다. 그런데, 과거의 소비자 주권이 제품의 가격 인하를 추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운동이었다면 지금은 달리 생각할 때이다. 컨슈머리즘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후생과 행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언택트 유통의 효율과 편리에 각광하기 보다는 그 효율과 편리를 위해 희생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새로운 소비자주의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소비자는 새로운 철학으로, 사회는 새로운 사회규약을 정책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몇 년 전, 국제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서구의 소비자들은 2~3일내 배송이면 ‘총알배송(Quick Delivery)’이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소비자들은 당일배송 정도 되어야 총알배송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우리가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컨슈머리즘을 시작해보기를 기대해 본다.


소비자리포트 2020년 9월호